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목사로써 “유골과 무덤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유산”을 천대 이르러 남기고 싶다.
수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다음세대”에 심각성과 비전을 가지고 집중하며 사역을 한다. 나는 2025년 우리나라 초고령사회를 맞아 “가는세대”에 대해 온 생애를 사역하기로 결단을 했다.
웰다잉, 웰라이프, 기독교 장례, 인생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많은 공부와 자격증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중이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해도 나의 흔적을 통해 믿음의 유산과 한 영혼의 감동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천국을 사모하게 된다면 내 생애 가장 큰 의미의 삶이라 생각한다
1. 창대교회 담임목사
2. 기독교장례실천운동 선교목사
3. 장례지도사
4. 복지사 2급
5. 요양보호사
6. 품성 강사
7. 성경적 재정 강사
8. 화성시 웰다잉 강사
89년 총신신학대학원을 다니며 전도사 신분으로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상촌마을에서 등대교회를 설립 개척했다. 그때 큰 아이 한나가 3살 둘째 아들 요셉이 출생 100일이 되었다.
그때 상촌마을은 칠보산 자락에 전형적인 시골 을었다. 1주일에 두세번은 칠보산 중턱 바위 틈에서 무당들은 밤새워 불공을 드리곤 했고,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고 한씨와 이씨들의 집성촌이었다. 1995년 LG에서 우리마을에 엘지빌리지 3,200여세대를 건축하게 되었고 우리는 종교부지를 받고 매입과정에 너무도 힘든 일들이 겪었다.
우리교회는 엘지빌리지 입주 후 종교부지에 조립식으로 60여 평을 건축하고 목회를 했다. 2000년이 되면서 아파트 입주로 교회는 성장해서 출석성도 98명까지 성장했다. 장로1인, 안수집사 6인을 세우고 목회를 하던 중 김00 장로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 우리는 심한 다틈의 조짐이 있어 결국 다시 개척을 목표로 사임을 했다.
2007년 내 생애의 최고의 아픔을 격고 다시 개척을 준비했다. 그때 한나가 총신대 3학년 요셉가 고3년이었다.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고색동에서 지구촌목양교회 두 번째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요셉이는 1년 재수를 하고 3개월 연기학원을 다니며 서일대 연기학과에 들어갔다. 등록금이 350여만원이 없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극적으로 마감 하루 전에 입금을 했다
“요셉아 남들은 당연한 자녀들의 등록금 입금하지만 아빠는 참으로 힘들게 하나님 은혜로 지금 막 등록을 마쳤다. 너희 대학 생활 마음껫 네 꿈을 실현해보거라”하며 문자를 한 기억에 지금도 울컥 한다